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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기업이야기

한화비전 2대 주주로 올라선 오르비스?

by 차르스 2026. 2. 11.

최근 국장(국내 증시)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AI와 로봇 섹터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실적과 밸류에이션이 뒷받침되는 종목들이 다시금 주목받는 모습이다. 내가 보유 중인 한화비전 역시 그 흐름의 중심에 서 있는데, 최근 흥미로운 공시가 하나 떴다.

글로벌 가치 투자 펀드로 유명한 **오르비스(Orbis Investment Management)**가 한화비전의 지분을 추가 매입하며 7% 이상을 보유한 2대 주주로 올라섰다는 소식이다. 단순한 지분 확대를 넘어, 글로벌 큰손이 왜 지금 이 종목을 찍었는지 그 배경과 오르비스라는 기업의 정체를 정리해 볼 필요가 있겠다.


1. 오르비스(Orbis)는 어떤 기업인가?

오르비스는 1989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전설적인 투자자 앨런 그레이(Allan Gray)가 설립한 자산운용사다. 본사는 버뮤다에 있으며 전 세계 10여 개국에 거점을 두고 약 400억 달러(한화 약 50조 원 이상)의 자산을 운용하는 글로벌 거물이다.

이들은 흔히 **'유럽의 워런 버핏'**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철저하게 기업의 내재가치를 분석하고, 시장의 소음과는 반대로 움직이는 전략을 취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단기 수익률에 연연하지 않고 최소 5년에서 10년 이상을 내다보는 초장기 투자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2. 오르비스의 투자 스타일: "철저한 역발상(Contrarian)"

오르비스의 투자 철학은 명확하다. **"남들이 외면할 때 사고, 환호할 때 판다"**는 것이다.

  • 바텀업(Bottom-up) 접근: 거시 경제 지표보다는 개별 기업의 펀더멘털과 경영진의 역량을 직접 파악하는 데 집중한다.
  • 역발상 투자: 시장에서 저평가된 '소외주'를 찾아내어 제 가치를 찾을 때까지 인내한다. 실제로 이들은 한국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오히려 저렴하게 우량주를 담을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해왔다.
  • 집중 투자: 수백 개의 종목에 분산하기보다 확실한 확신(Conviction)이 있는 소수의 종목에 거액을 베팅한다. 이번 한화비전 2대 주주 등극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3. 한국 시장에서의 실제 투자 성과와 사례

오르비스는 한국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들이 과거 5% 이상 지분을 보유했던 종목들의 궤적을 보면 이들의 안목을 짐작할 수 있다.

종목명 특징 및 투자 결과
키움증권 2009년부터 10년 넘게 보유하며 막대한 배당과 차익을 실현했다. 한국 온라인 브로커리지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일찍이 알아본 사례다.
KB금융 최근까지도 주요 주주로 이름을 올렸으며, '밸류업' 이슈가 터지기 전부터 저평가된 금융주의 가치에 주목해 쏠쏠한 수익을 챙겼다.
현대엘리베이터 지배구조 개선 이슈와 현대그룹의 재무 구조 변화 속에서 지분을 매입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수익을 낸 바 있다.

최근 이들은 기존에 들고 있던 금융주 일부를 차익 실현하고, 그 자금을 한화비전과 같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제조·기술주'로 옮겨오는 포트폴리오 재편을 단행하고 있다.

 

4. 오르비스의 '미친 인내심': 글로벌 투자 성공 사례

오르비스의 투자 스타일을 이해하려면 그들이 과거 어떤 기업에서 수익을 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특히 '남들이 욕할 때 사서 환호할 때 파는' 역발상 투자의 정수를 보여준다.

① 중국 넷이즈(NetEase)

오르비스의 가장 상징적인 성공 사례다. 이들은 2008년부터 무려 17년 넘게 넷이즈를 보유해왔다. 중국 게임 규제 이슈로 주가가 반토막 날 때도 이들은 "창업자의 비전과 기업의 본질적 가치는 변하지 않았다"며 인내했다. 결과적으로 연평균 20%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오르비스 펀드 내 단일 종목 수익 기여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② 삼성전자 (Samsung Electronics)

국내 주식 중에서는 삼성전자를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삼성전자가 '반도체 치킨 게임'이나 '지배구조 이슈'로 고전할 때마다 지분을 늘려왔다. 단순히 1~2년 보유하는 게 아니라 사이클을 통째로 먹는 전략을 취하며, 현재도 글로벌 포트폴리오에서 높은 비중을 유지하고 있는 핵심 캐시카우다.

③ 미국 XPO Logistics (현 QXO 등)

물류 업계의 혁신가로 불리는 브래드 제이콥스의 XPO에도 초기부터 거액을 베팅했다. 시장에서 물류 산업을 사양 산업으로 볼 때, 이들은 IT 기술이 접목된 물류의 효율성에 주목했다. 이후 XPO가 여러 기업으로 인적 분할되고 주가가 폭등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엑싯(Exit) 성과를 거둔 바 있다.

 

5. 한화비전, CCTV는 '명분'이고 반도체가 '실리'다

오르비스가 한화비전의 2대 주주로 올라선 진짜 이유를 들여다보면, 단순히 AI 카메라 잘 팔리는 수준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다. 바로 한화비전이 100% 지분을 가진 자회사, **한화세미텍(Hanwha Semitech)**의 존재다.

오르비스 같은 가치 투자자들이 지금 시점에 한화비전(정확히는 그 밑의 세미텍)에 배팅한 이유는 아래의 '반도체 장비 풀라인업'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 TC 본더(Thermal Compression Bonder): 현재 HBM(고대역폭 메모리) 제조의 필수 장비다. 한미반도체가 시장을 꽉 잡고 있지만, 한화세미텍이 SK하이닉스 등에 대규모 수주를 성공시키며 강력한 대항마로 부상했다. 오르비스는 이 '듀오폴리(과점)' 구조에서 오는 수익성에 주목했을 것이다.
  • 하이브리드 본더(Hybrid Bonder): 차세대 HBM과 어드밴스드 패키징의 게임 체인저다. 2026년 초 2세대 장비 출시를 앞두고 있는데, 이 시장이 열리면 밸류에이션 자체가 달라진다.
  • FOPLP (Fan-Out Panel Level Packaging): 칩을 웨이퍼가 아닌 패널 단위로 패키징해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기술이다. 한화세미텍이 공을 들이는 미래 먹거리 중 하나다.
  • 몰리브덴 ALD (Atomic Layer Deposition): 반도체 전공정에서 미세 공정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증착 장비다. 후공정뿐만 아니라 전공정 핵심 장비까지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는 글로벌 투자자 입장에서 매우 매력적인 '옵션'이다.

3. 총평: 보안의 현금과 반도체의 성장성

결국 오르비스의 계산기는 이렇게 두드려졌을 것 같다.

"본업인 AI 영상 보안(한화비전)은 미국 내 중국산 배제 수혜로 현금을 꼬박꼬박 잘 벌어다 주고(Cash Cow), 자회사(한화세미텍)는 HBM과 차세대 패키징 장비라는 폭발적인 성장성(Growth Engine)을 가졌다."

작년 말 정치적 이슈로 주식 시장이 혼란스러울 때도 묵묵히 자리를 지켰던 종목들이 이제야 제 가치를 인정받는 기분이다. 오르비스가 7%나 들고 있다는 건, 적어도 이 기업이 향후 몇 년간 보여줄 '반도체 장비사로서의 변신'에 자신감이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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